우선 DNA 검사를 원해 유가족이 응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후 검찰자체에서 그리고 국과수를 통해 일련을 검사를 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현미경으로 본 시료 검사인데, 안료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임으로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1991년 당시 한국과학기술원이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 웨이블릿 검사라는 것도했는데 유의미한 결과를 못얻었습니다. 웨이블릿은 고호의 그림과 같이 두터운 붓자욱이 있는 작품같은 것을 관찰하는데 유익하다고합니다. 검찰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미인도>에는 “비싼 석채가 사용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석채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동양화 안료는 크게 분채와 석채로 나뉘는데 석채란 돌과 광물에서 나온 성분으로 만든 안료입니다. 많은 화가들이 분채와 석채를 같이 쓰고, 석채를 위주로 작품하는 동양화가들이 이미 70년대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천 화백의 제자들은 이미 60년도에 석채사용법을 배워 석채를 썼다고 증언하며 70년대에는 석채 구하기가 더욱 쉬웠다고 증언합니다. 또한 석채라고 다 비싼 것은 아닙니다. 현대미술관은 무조건 “석채”가 발견됐다고 이것이 천 화백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는 황당한 주장입니다. 어떤 종류의 석채가 어디서 얼마만큼 발견됐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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