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 2017년12월06일 13:38

[뉴스핌=황수정 기자] 극단 위대한 모험의 연극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이 오는 22일 관객들과 만난다.

연극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천경자 화백 사이에 벌어졌던 ‘미인도’ 위작 논란을 다룬 작품으로, 2017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됐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작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이 진작으로 판정, 검찰 역시 지난해 12월 ‘미인도’를 진작으로 판정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를 과천관에서 열리는 ‘소장품 특별전:균열’에 포함시켜 전시하고 있으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공연은 위작을 진작으로 만들어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짜’였던 사람들이 ‘가짜’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기성세대의 감각으로 좋은 시절을 추억하고 변절을 변호하는 ‘후일담’을 술회한 것이 아니라,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 혹은 관료제의 일그러진 모습을 정면으로 주시한다.

작품은 ‘미인도’ 위작 논란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현재형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91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과 함께 강기훈의 유서대필 사건을 함께 다룬다.

한편, 故천경자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교수는 “‘미인도’ 사건은 미술관과 화상들이 결탁해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려 했던 불행한 사건이며, 그 과정에서 작가의 인권은 무참히 유린됐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아직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며 “이 극은 ‘미인도’ 사건을 소재로 삼았지만 권력과 실리 앞에 왜소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전했다.

연극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오는 22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

 

2017/11/25 08:05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1930년대 이후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여성 작가들이 쓴 작품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내달 29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여성이 쓰다 – 김일엽에서 최명희까지’다.

이번 전시는 박경리와 박완서가 쓴 소설, 노천명과 모윤숙의 시, 천경자와 전숙희가 기록한 수필, 김일엽과 최승희의 회고록 등 자료 100여 점으로 꾸며졌다.

희귀 도서로는 박화성이 1932년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백화'(白花),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최승희가 집필한 ‘최승희 자서전’, 선구적 여성 문인이었던 김일엽의 회고록 ‘청춘을 불사르고’ 등이 나왔다.

또 1968년에 간행된 ‘여류문학’ 창간호를 비롯해 ‘여성계’, ‘여원’, ‘영레이디’ 등 여성 잡지도 볼 수 있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은 “많은 여성 작가들은 투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탐구했다”며 “여성 작가들이 문학사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류문학’ 창간호(왼쪽)와 ‘여성계’. [삼성출판박물관 제공]

 

psh59@yna.co.kr

2017-11-09 10:49:53  내일신문 게재

미인도 사건이 26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은커녕 법정공방에 국정감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진위문제라면 이렇게 복잡하게 꼬일 이유가 없다. 이런 소모적인 논란을 방지하려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어떤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문제의 근원은 1991년 당시 천경자 화백이 미인도를 위작이라고 주장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해 단 며칠 만에 진품으로 발표한 것이다. 확실하고 객관적인 물증과 증거 없이 안목감정으로 작가의 주장을 뒤집어 첫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당시 화랑협회 규정에도 “생존 작가의 진위문제는 정신적 이상이 없는 한 작가의 의견을 우선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무시되었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오히려 작가를 정신이상자로 몰아붙였다.

거짓과 납득할 수 없는 증거로 작가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여 과연 전문가의 안목 감정이 작가를 넘어설 수 있을까? 자연과학자가 자연을 창조한 신을 넘어설 수 없듯이, 감정가가 작가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 상식이다. 나도 천경자 회고전을 기획하고 평전을 썼으니 천경자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나 내가 작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얼마 전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했을 때 “평론가는 작가를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 국회의원이 그럼 이우환의 경우를 대며 작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신뢰할 수 없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 그렇다. 천경자는 문제작이 본인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이우환은 문제작이 본인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이럴 때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런 논쟁에서 우선적 결정권은 당연히 작가에게 있다. 그리고 작가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면 꼼짝 못할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작가 스스로 수정하게 해야 한다. 만약 작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내용을 공표해서 증거의 객관성 여부에 따라서 작가에게 도덕적 책임을 전가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증거의 객관성이다. 그런데 미인도의 경우 거짓 소문과 납득할 수 없는 증거로 작가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임으로써 사건을 키웠다. 만약 전문가들의 안목감정에 의해서 생존 작가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전문가들이 담합하면 위작을 진품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거짓 소문의 실체와 객관적 증거를 찾는 데 골몰했어야 했다. 최근 김재규의 집사였던 최종대씨는 JTBC 인터뷰에서 “당시 미인도 액자는 지금 것과 달리 뒤에 받침대가 있는 싸구려 액자였다”는 새로운 증언을 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미인도가 천 화백이 선물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조사해야 할 중요한 증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러한 내용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전문가를 섭외해 안목감정을 하게 했다. 나 역시 감정에 참여해 위작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과학감정을 한 뤼미에르의 위작 주장도 무시되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검찰이 납득할 만한 객관적 증거를 찾지 못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주관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작 해야 할 학술토론회 한번 열지 않으면서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작품의 최고 권위자는 검찰이고, 다음이 전문가, 마지막이 작가의 순서가 된다. 이 반대 순서가 되어야 상식인데, 이 상식이 어떤 정치적 입장에 의해서 뒤집힌다면 부끄러운 선례로 남을 것이다.

진위 논쟁은 언제나 있을 수 있고 전문가들이 공개토론을 통해서 건전하게 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정작 해야 할 학술토론회 한번 열지 않으면서 국가기관이 공권력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앞으로도 힘없는 예술가의 인권을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고 첫단추를 다시 꿰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최광진 미술평론가

 

죠지타운 대학 클리프 키에포 석좌 교수 천경자 위작 <미인도> 분석 동영상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 12월19일 검찰이 “<미인도>는 고 천경자 화백이 그린 진품이다”라고 발표한 직후의 일이다. 제목에 ‘결론’ ‘종지부’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쏟아졌다. “이제 천 화백의 작품세계 연구에 매진할 때”라는 미술계 인사들의 발언도 소개됐다. 1991년 천 화백이 문제를 제기한 이래 25년 만이었다.

김정희씨(63)에게는 끝이 아니었다. 미국 몽고메리 대학 미술과 교수인 김씨는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이다. 김 교수는 7월20일 직접 쓴 책 <천경자 코드>를 내놓았다. 가족이자 미술인으로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주장을 풀어 적었다. 김정희 교수에게 천경자 화백과 <미인도> 이야기를 물었다.

<천경자 코드>는 어떻게 쓰게 됐나?

그간 여러 출판사의 청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해왔다. 유명한 부모들의 자녀가 책 쓰는 일이 좋게만 보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지난해 말 검찰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를 하고, 내 반박은 간접적으로만 알려지니 답답했다. 책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지난 2월부터 5개월간 썼다.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가 <미인도>를 위작이라고 밝혔으나, 검찰은 인용하지 않았다.

어머니 작품 9점과 <미인도>를 놓고 ‘빛의 균형’을 비교분석했다. 화가가 작품 안에서 맞추는 ‘주관적 명암 대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진품들은 대부분 98~99%였으나 <미인도>는 0.0002%였다. 검찰은 진품 가운데 확률이 떨어지는(42.5%) 작품 한 점을 이 계산식에 대입해, ‘진품도 이 방법에 따르면 진품 확률 4%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내가 조언을 구한 통계학 교수들은 이를 ‘무의미하고 부적절한 통계 적용’이라고 평했다.

평소보다 신경을 덜 쓴 작품일 가능성은 없나?

어머니는 사람의 정면 얼굴을 그릴 때 의도적으로 인중을 표현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코와 입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미인도>는 ‘굳이’ 인중을 표현했다. ‘스케치 선’도 근거가 된다. 화가로서 경지에 이른 1977년 이후 어머니의 채색화(색을 입힌 동양화)에는 스케치 선이 없다. 스케치는 옆에 펼쳐두고 참고할 뿐, 처음부터 붓으로 윤곽선을 그렸다. 검찰 발표에서 <미인도>의 ‘인중 표현’과 ‘세밀한 스케치 선’을 진품의 근거로 든 것이 우스운 이유다.

<미인도>에 쓰인 재료도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석채(동양 채색화에 쓰이는 광물질)’가 쓰였기에 어머니 작품이라고 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미인도>에 쓰인 석채는 소량이고 대부분은 값싼 분채로 칠했다. 같은 석채라도 어머니는 일본의 ‘유벤도(유편당)’ 제품만 썼다. <미인도>에 쓰인 석채는 질도 더 낮다. 위조범이 구하기 어려운 재료여서 그럴 것이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천 화백의 <차녀 스케치>가 지난해 나왔다. <미인도>와 흡사하다.

전시되거나 판매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도 못 보는 건 아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이미 어머니는 유명 인사였고, 매일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어머니가 스케치를 옆에 놓고 엎드려서 작업하는 동안 찍힌 사진도 많다.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어머니 몰래 작품을 베끼고 있어서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다. 완성작이 아닌 다음에야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김 교수가 고소·고발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미술평론가 정준모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사람 직업 때문에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는데, 나는 진품 주장 자체에 법적 대응한 게 아니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했다는 게 문제다(검찰은 지난해 12월 정씨에 대해 ‘천경자가 생전 포스터만 보고 위작이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KIST에서 진품이라고 확정했다’ ‘천경자가 법적 대응했으나 법원은 판단 불가라고 했다’라는 등 6가지 허위 사실을 적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991년 처음 문제가 터질 때는 상황이 어땠나?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생전에 미술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나?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림 주는 것을 꺼렸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몇 점이나 남겼나?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유가족이 이렇게 오래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천 화백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말년에도 <미인도> 이야기를 했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1991년 처음 문제가 터질 때는 상황이 어땠나?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생전에 미술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나?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림 주는 것을 꺼렸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몇 점이나 남겼나?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유가족이 이렇게 오래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천 화백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말년에도 <미인도> 이야기를 했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1991년 처음 문제가 터질 때는 상황이 어땠나?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생전에 미술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나?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림 주는 것을 꺼렸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몇 점이나 남겼나?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유가족이 이렇게 오래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천 화백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말년에도 <미인도> 이야기를 했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1991년 처음 문제가 터질 때는 상황이 어땠나?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생전에 미술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나?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림 주는 것을 꺼렸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몇 점이나 남겼나?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유가족이 이렇게 오래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천 화백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말년에도 <미인도> 이야기를 했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1991년 처음 문제가 터질 때는 상황이 어땠나?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생전에 미술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나?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림 주는 것을 꺼렸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몇 점이나 남겼나?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유가족이 이렇게 오래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천 화백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말년에도 <미인도> 이야기를 했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1991년 처음 문제가 터질 때는 상황이 어땠나?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학 중에 급히 귀국했다. 어머니는 언론이나 화랑협회, 국립현대미술관 직원들에게 악을 쓰듯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눈에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할 때까지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라고 했다. 당시 67세였는데, 인터뷰 화면을 보면 지금 나보다 정정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노환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오래된 작품이라서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부인했다는 주장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만약 수십 년 전 그린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로서 반갑지 왜 가짜라고 우기겠나? 심지어 중학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도 기뻐했던 어머니다. 진품을 위작이라고 우길 이유가 전혀 없다.

생전에 미술계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나?

평론가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이 있는데 저명한 평론가 한 사람이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만 평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대놓고 “당신이 제일 젊고 여자니까”라고 했다더라. 어머니가 쓴 예전 편지를 보니 ‘평론가들은 그림이나 원한다’는 내용이 있더라.

그림 주는 것을 꺼렸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화랑에도 잘 넘기지 않았다. 팔기보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외출했다가 들어와서는 그림더러 “잘 있었냐?”라고 했다. 화랑에서 사정사정해 어쩌다 한 점 넘기고 나면 밤새 못 견뎌했다. 전날 준 작품을 화랑에 가서 되찾아온 적도 있다. 그 화랑 대표가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천경자가) 아침 일찍 창백한 얼굴로 와서 ‘그 그림이 옆에 없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부르르 떨다가 눈물을 쏟았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몇 점이나 남겼나?

나에게는 한 점도 없다. 어머니 주변 사람들은 그림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정말 친한 사람은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그림을 얼마나 피붙이처럼 여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화랑 대표가 “사람들은 천 화백과 가까운 내가 작품을 많이 판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친했던 이유는 천 화백에게 그림을 달라는 말을 안 해서다”라고 했다. 나나 그런 분들은 (<미인도> 진위 논란에) 이해관계가 없다.

유가족이 이렇게 오래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종 목적은 어머니의 명예 회복뿐이다. <미인도>는 허술하고 엉성하다. 진작 폐기했어야 하는 그림이 온갖 거짓이 동원돼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버젓이 걸렸다. 작가 본인에게도 폭력이지만 국민들의 문화 향유도 침해한다.

천 화백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말년에도 <미인도> 이야기를 했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 언급했다. 애통해했다. 해결해달라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림에는 대가였지만 평생 꾸며서 말할 줄은 몰랐던 어머니다. 그 원초적 정직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책에도 가감 없이 사실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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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값비싼 소장품이 위작이든지 혹은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우선 그 미술관의 권위가 크게 흔들릴 것이다. 고가의 그림 값도 복구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무엇보다 향후 미술관의 입지가 매우 불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것도 한 미술관의 어떤 한 작품이 아니고 다수의 미술관이 소장한 다수의 그림들이 그러하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어떻겠는가.

모렐리식 위작판별 기술은 작가의 습관적 세부 묘사에 주목 천경자 위작 시비 끝낼 증거 나와

1870년대 유럽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독일 미술잡지에 이반 러몰리에프라는 무명 학자의 글이 게재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유럽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엉뚱한 작가의 이름 아래 전시되고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그 뒤 글의 저자가 조반니 모렐리임이 밝혀졌는데, 사실 러몰리에프는 모렐리란 이름의 철자를 바꾸어 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위작 판별기술은 후일 ‘모렐리식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모렐리는, 이전 대부분의 미술 감정가들과는 달리, 누구나 인정하는 작품의 가장 명확한 특징을 진위 감정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특징이야말로 가장 모방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컨대 ‘모나리자’의 미소나 페루지노의 ‘성모 승천’에서 천상을 응시하는 눈동자들 같은 것이 그러하다. 대신에 그는 귓불, 손톱, 손가락, 발가락처럼 스타일과는 무관한, 작가의 개인적 습관이 지배하는 가장 사소한 세부묘사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유럽 미술관의 적지 않은 작품들의 진위를 가려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모렐리의 방법은 이후 버나드 베렌슨, 구스타보 프리초니, 장-폴 리흐터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코난 도일과 프로이트 역시 이 방법을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각각 탐정소설과 정신분석에 원용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최근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이를 ‘실마리 찾기’라는 이름으로 미시사의 방법에 차용한 바 있다.

내가 모렐리의 방법을 다시 떠올린 것은 최근 천경자의 작품을 둘러싼 위작 시비를 종식할 새로운 증거들이 나타났고, 이 증거들이 모렐리의 ‘증거들’과 본질상 동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른바 ‘미인도’가 위작 문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91년 봄이었다. 천경자 화백은 즉시 위작임을 밝혔으나, 현대미술관 및 그것과 밀착된 한국화랑협회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것을 진품이라 판정하였다. 심지어 1999년 권춘식이란 인물이 스스로 ‘미인도’를 그렸다고 고백했으나 미술관 측은 여전히 그것이 진품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최근 뤼미에르광학연구소는 그림의 물감 단층을 분석하여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는 결과를 제시했으나, 미술관 측이나 이 사건을 맡은 검찰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가가 명확하고도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그린 게 맞다’고 강변하는 희한한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조지타운대학 미술과 교수인 클리프 키에포와 문병강 교수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천 화백의 작품들 속에는 모방 불가능한 자신만의 ‘코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은 ‘미인도’가 그려졌다는 1977년에 천 화백이 그린 그림 7점을 분석해 천 화백만이 사용한 5가지 코드를 판별해냈다. 즉 홍채 채색 아래 일련의 사선들이 있으며, 인중이 없고, 윗입술에 U자 곡선이 없으며, 필기구로 눌러쓴 스케치 선이 보이고, 인물의 목 부위에 숟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인도’에는 이런 것이 없다. 이로 보아 그것은 틀림없이 위작이다. 키에포-문의 방법은 그림표면 아래의 숨은 코드를 찾아내고자 했지만, 사소하지만 반복적인 특징을 진위 판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모렐리의 방법을 차용한 것이다. 이 코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는 김정희의 책 ‘천경자 코드’를 읽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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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4월 과천관 소장품 특별전에 위작 논란이 진행 중인 <미인도>를 26년 만에 공개했다. 검찰이 진품으로 결론 내린 지 4개월 후였다. 이에 대해 천경자의 둘째 딸 김정희는 7월20일 <미인도>가 위작임을 논증한 책 <천경자 코드> 출간 기자회견에서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미인도> 전시는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리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미인도>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1년 3월31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 전시회에서였다. 그 사실을 지인에게 전해들은 천경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확인을 요구했다. 자신의 그림에 그런 제목을 붙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인도>를 본 천경자는 “눈에 힘이 없어 얼굴이 허깨비 같다. 코가 벙벙하게 그려졌고, 머리의 꽃이 조잡하다. 이건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미인도가 제작되었다는 1977년은 천경자가 창작에 혼신을 다한 해였다. <수녀 테레사>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나비와 여인의 초상>과 같은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이해에 태어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미인도>는 내 그림이 아니다”라는 천경자의 말을 받아들였어야 한다. ‘미술품 감정의 종결자는 작가’라는 수칙이 국내외 미술계에서 ‘감정의 척도’로 지켜져 왔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 소속 감정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위원회는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을 감정위원에서 배제한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화랑 대표를 5명이나 위촉했다. 감정 결과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했다.

작가에게 작품은 혼의 분신이며 자기 존재 자체이다. 더욱이 천경자는 개념보다는 혼을 창작의 중심에 두는 작가였다. 천경자가 작품 파는 것을 유난히 꺼린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자식 팔아먹은 어미 심정 같다”고 했다. 마지못해 작품을 판 뒤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되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런 작가를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신의 작품을 못 알아보는 정신 나간 작가’로 몰아갔다. 왜 그랬을까? <미인도>가 위작으로 판명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그 사건과 관계된 관료들이 자리를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망한 천경자가 절필을 선언하고 ‘<미인도>는 위작’이라는 내용의 친필 공증서를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난 지 7년 후인 1999년 7월 동양화 위조사건으로 입건된 권춘식은 담당 검사에게 “화랑을 운영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천경자 그림에서 꽃과 나비, 얼굴 형태를 본떠 <미인도>를 그려주었다. 천 화백은 가는 붓으로 물감을 여러 겹 쌓아 두텁게 그리지만 나는 단기간에 완성해야 했기에 두꺼운 붓으로 쓱쓱 칠했다. 한 3일 정도 걸린 것 같다”고 진술했다.

2003년 7월 뇌일혈로 쓰러진 천경자가 언어기능을 상실한 채 누워만 있다가 2015년 8월 별세하자 ‘미인도 사건’이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이 국회에 제출한 ‘미인도 위작 논란 경과보고서’에서 중요한 내용들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2016년 4월 김정희와 공동변호인단은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6명을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고소 고발했다.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가 <미인도>를 감정했는데, ‘진품 확률이 0.0002%’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검찰은 12월19일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납득이 불가능한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의 <미인도> 감정에 참여한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학적으로 천 화백의 혼이 느껴지지 않는 점과, 기법적으로 천 화백과 다른 부분을 10여가지 적어내며 위작으로 판정했다. 그런데 얼마 후 담당 검사에게서 ‘이거 그냥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는 전화를 받고 검찰이 이미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뤼미에르 연구소의 감정 결과도 나오기 전이었다”라고 썼다. 거짓을 지키려면 수많은 거짓들이 필요하다. 미술계 전체가 거짓의 피라미드에 연루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계 권력구조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권력구조를 검찰이 보호해준 것이다.

‘미인도 위작 사건’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떠오른다. 사건의 성격과 형태는 다르지만 국가권력이 진실을 감추려고 거짓의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유린한 점에서 본질적으로 두 사건이 자연스럽게 만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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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타운大 키에포 교수 6개월간 천화백 작품 ‘미학적 분석’
차녀 김정희 교수 ‘천경자 코드’ 출간···진위 논쟁 다시 재점화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미인도’는 명백히 천경자의 손으로 그려진 작품이 아니다”

【서울=뉴시스】조지타운대 클리프 키에포 교수

조지타운대 클리프 키에포 석좌 교수가 “우리 연구진은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통해 1977년도 천경자 화백의 진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천경자 코드’를 발견했다”면서 “‘천경자 코드’는 미인도가 천경자 화백의 손으로 그려진 작품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결정적이며 미학적인 증거”라고 밝혔다.

키에포 교수는 조지타운대 미술과의 창설자로 미술전문 서적 저술가, 미술품 복원 전문가이자 감정가, 그리고 미국 미술품 보전 복원 협회회원으로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베테랑으로 알려져있다.

키에포 교수는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천화백 사위)와 연구팀을 꾸려 지난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천경자 작품을 분석했다. ‘천경자 코드’는 천경자 화백의 최초의 미학적 분석 자료이기도 하다. ‘천경자 코드’는 천 화백만의 차별화된 작법으로 ‘다섯가지 비밀’이 담겼다. 천 화백의 1977년 작품 8점을 분석하면서 드러났다.

각 비교 작품은 대부분 200메가 이상의 고화질 이미지를 대상으로 했다. 키에포 교수는 “가장 큰 작품이 43.1×51.7cm(나비와 여인의 초상), 가장 작품이 27.7×31cm(미인도)인 점을 감안하면 작품 크기에 비해 해상도가 뛰어나 정밀한 관찰을 할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입체를 선화(線化)시키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천경자 코드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키에포 교수는 “천경자 코드는 천경자 화백만의 고유한 터치, 특정 부위의 과감한 포기등 작품을 차별화를 위해 고안된 숨겨진 장치”라며 “이 분석을 통해 미인도가 얼마나 허술하게 만들어진 조악한 그림인지 그 실체를 보았다”고 했다.

“우리 연구팀은 무엇보다 이 분석의 공정성을 위해 노력했고, 다각도로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천경자 코드를 발견했다. 천경자 코드를 통해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는 명백한 결론에 도달했다.”

키에포 교수는 “우리는 작품 비교를 시작하는 초기 단계부터 왜 미인도가 진위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지 무척 의아했다”면서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세계와는 모든 면에서 너무나 거리가 먼 그림이라는 것이 첫눈에도 명백했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미인도는 진위 판정을 내릴 필요도 없을 정도로 허술하고 조악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작가의 진술이 위작 판명에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다”고 했다.

“작가가 분명 ‘위작’이라고 여러차례 지속적으로 언급한 강력한 주장이 무시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경악했다’고 전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 같은 내용은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0.0002%’라고 했던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의 감정 보고서를 뒷받침하는 한편, 검찰이 ‘진품’이라고 발표한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이어서 주목된다.

【과천=뉴시스】 최진석 기자 = 18일 경기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관계자가 위작 논란이 일고 있는 ‘미인도’를 바라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위 논란이 일고 있는 ‘미인도’를 이날 언론에 공개 19일부터 ‘소장품전:균열’을 통해 일반에 공개, ‘미인도’가 일반에 공개되는 건 26년 만에 처음이다. 2017.04.18. myjs@newsis.com

그렇다면 키에포 교수가 발견한 ‘천경자 코드’ 다섯가지 비밀은 무엇일까.

① 홍채의 비밀

“천경자 화백의 1977년도 정면 여인상 다섯점에는 전부 홍채의 비밀이 촘촘히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그러나 같은 해에 그려졌다는 미인도의 홍채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천경자 화백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선 혹은 불규칙한 점으로 의도적이고 확연한 흔적을 홍채에 남겼다. 이러한 흔적은 1977년도 비교 대상 작품들에서 예외없이 나타났다.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 르동의 작품에도 얼굴과 눈동자에 사선을 첨가한 예를 볼수 있다. 이 부분에서 천경자 화백은 짐작하건데 르동의 영향을 받앗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하지만 르동의 사선과 천경자 화백의 홍채에 나타난 사선은 완연히 다르다. 미인도를 그린 위작자는 천경자 화백의 화풍을 어설프게 흉내 낼수 있을지언정 작가의 혼이 스며든 작법까지 모방할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②인중의 비밀

“천경자 화백의 1977년도 비교 대상 작품들에서 코 아래 인중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표시되지 않은 인중 부재 즉, 무(無)인중이 두번째 비밀이다. 모나리자에도 인중이 들어가 있다. 프리다 칼로도 인중을 표시했다. 인물에 인중을 의도적으로 표시하지 않는 화가는 천경자 화백외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중 부재는 1977년 이후의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인도가 천경자 화백이 그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1977년도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 가운데 인중이 그려진 진품을 발굴해 제시해야 할 것이다.”

③입술의 비밀

“천경자 화백은 윗입술의 U자 곡선을 의도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입술을 투껍게 칠했지만 굴곡이 없이 빤빤하게 가로 방향으로 양쪽에서 잡아당기 듯 형성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미인도에는 뚜렷한 U자 곡선이 등장한다. 미인도가 허술하게 그려진 위작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뤼미에를 감정팀의 단층 사진도 미인도의 입술이 천경자 화백의 작법과 완전히 다르게 그려졌다는 광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입술을 그려가는 과정 역시 위작자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④스케치 선의 비밀

“1977년도 비교대상 작품 5점에서는 밑그림에 해당하는 스케치 선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채색 동양화가들이 작품 밑그림을 그리는데 반해, 천화백의 작품에는 스케치 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미인도에는 무수히 많은 스케치선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뤼미에르 감정팀의 단층사진을 활용했다. 천화백의 작품에 나탄나지 않는 스케치 선이 미인도에만 있다는 것은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또 다른 증거다.”

⑤숟가락의 비밀

“다섯번째 코드는 지금껏 찾아낸 코드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하고 희귀하다. 우리는 이 코드를 ‘숟가락의 비밀’이라고 브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작가가 여인상의 특정 부위를 숟가락으로 비비고 문지른 뚜렷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인도에는 숟가락으로 문지를 흔적인 단 한군데도 없다. 이 숟가락 비밀은 천화백만이 지닌 은밀한 특화 표현이자 비밀이므로 위작자가 그 깊은 내막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천경자 화백의 1977년 작품을 이처럼 깊이 있게 분석한 미학 연구서는 처음이다.

‘미인도’가 가짜인 이유를 밝히는 증거로 제시된 이같은 내용의 상세한 연구보고서는 김정희(62·미국 몽고메리대 미술과)교수가 출간한 ‘천경자 코드’에 발표됐다. 김 교수는 고 천경자(1924∼2015) 화백 둘째딸이다.

‘위작 미인도’ 사건의 중심이 된 그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단독 조명을 받으며 전시중이다. 2016년 12월 19일 검찰이 ‘진품’이라고 발표한 후 2017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자신있게 공개했다.

진품 발표와 그림의 일반 공개로 ‘위작 미인도 사건’은 슬그머니 조용해졌었다. 하지만 유족측은 항고와 기각을 오가며 ‘미인도는 위작’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배금자 변호사등 10여명의 공동 변호인단도 발족, “‘위작 미인도’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작가 인권 유린 사건”이라며 진실 규명에 나서고 있다.

‘천경자 코드’를 낸 김정희 교수는 “어머니가 성취한 모든 것들에 관해선 그림자 자리에 서고 싶고, 못다 풀고 간 한은 풀어드리고 싶다”면서 “위작 미인도 사건 당시의 영상 자료를 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평생을 그랬듯 꾸며서 말할 줄 모르는 어머니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그러한 원초적인 정직함에 부끄럼이 되지 않도록 가감없는 사실만을 기록으로 남긴다”고 밝혔다.

26년만에 천 화백 그림속 다섯가지 비밀이 발견된 ‘천경자 코드’ 책은 끝난 듯한 진위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책에는 억장이 무너진 딸의 분노와 그리움, 통곡이 담겼다. 1장 ‘혹시라도 어머니가 여성이라서 좀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셨습니까?’로 시작한다. 330쪽, 맥스,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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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 화백 차녀 김정희 교수 책 ‘천경자 코드’ 발간

“다시 횃불을 지피는 마음으로 어머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싶었어요.”

고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오른쪽 사진) 미국 몽고메리대 미술과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 화백의 ‘미인도’ 위작 여부를 천 화백의 특징적인 화법(畵法)을 통해 분석한 책 ‘천경자 코드’(왼쪽)의 발간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20일로 예정된 책 출간 기자 간담회에 앞서 17일 문화일보와 만나 “집단의 이익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한 작가의 영혼을 말살하며 얼마나 많은 거짓이 만들어졌는지 밝히기 위해 책을 내게 됐다”며 “어머니가 양심을 속이고 ‘그렇다’고 했으면 편했겠지만 아닌 걸 아니라고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에 압류당한 천 화백의 작품이라며 소장한 ‘미인도’에 대해 1991년 천 화백이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위작 논란이 시작됐다. 한 미술평론가가 이 그림이 천 화백의 진품이라고 주장하며 파문이 일었고, 2015년 천 화백이 사망하며 논란이 재점화됐다. 김 교수는 “‘미인도’가 가짜임에도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며 국립현대미술관 직원 등 6명을 고소·고발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해 12월 5명을 무혐의 처분하고, 1명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며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교수는 “검찰의 수사 성과가 없어 해외 전문기관에 감정 의뢰를 하기로 했고, 검찰도 동의했다. 약 8만 달러가 드는 비용을 은퇴 연금을 꺼내서 충당했다”며 “프랑스 유명 감정팀이 1650장의 단층 사진을 촬영해 9개 검사 항목 모두 위작이라는 결론을 냈지만 검찰은 진품이라고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남편(문범강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의 동료인 클리프 키에포 조지타운대 교수에게 어머니가 1977년에 그린 진품과 ‘미인도’를 비교해달라고 부탁했다”며 “키에포 교수가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물화를 이렇게 그린 건 처음 본다’며 흔쾌히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이 책에는 ‘홍채의 비밀’ ‘인중의 비밀’ ‘입술의 비밀’ ‘스케치 선의 비밀’ ‘숟가락의 비밀’ 등 천 화백의 화법을 분석해 동시기 진품과 ‘미인도’를 비교한 5가지 ‘코드’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어머니는 인물의 눈에서 광이 날 때까지 반복적으로 붓질을 했다. 진품에 그려진 홍채는 켜켜이 쌓인 굴곡이 있지만 ‘미인도’는 평면적으로 그려졌다”며 “또 어머니가 1970년대 후반에 그린 인물화에는 인중과 입술 근육이 생략됐는데 ‘미인도’에는 인중이 그려져 있고, 입술 굴곡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어머니는 나무틀에 화선지를 1cm 정도 두께로 배접한 화판에 그림을 그렸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동양화처럼 본을 뜨지 않는다”며 “하지만 ‘미인도’에는 날카로운 스케치 선이 있다. 검찰은 그걸 진품의 근거로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숟가락의 비밀’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나머지 비밀은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어머니에 대해 잘 모른다”며 “또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감성적이고 환상적인 인물로 알고 있지만 굴곡진 삶을 살며 억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구도자의 길을 걸으신 분이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어머니의 삶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구철 기자
사진 = 신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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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 김어준의 파파이스(Papa is) 2017년 06월 30일 20:04 이경주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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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파이스 브리핑] 01:03
“국민의당, 제보자 조작 사건?!”

2.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21:46
“워싱턴에서 진짜 있었던 일은 이렇습니다.”

3.김민식 MBC PD 57:10
“김장겸 사장은 시민들이 문화방송을 포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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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합의는 원천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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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주의 리얼미터 01:57:34
“국민의당 위기? 보수의 미래의 이끌 당은?”

7.김정희 교수 | 천경자 화백 차녀 & 배금자 변호사 02:07:30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짜,가짜?”

* 연출: 이경주 구성: 박연신
종합편집: 문석진, 방송기술: 박성영,
메이크업: 강희정
카메라: 정동화 장지남 전상진 박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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