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9 10:49:53  내일신문 게재

미인도 사건이 26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은커녕 법정공방에 국정감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진위문제라면 이렇게 복잡하게 꼬일 이유가 없다. 이런 소모적인 논란을 방지하려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어떤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문제의 근원은 1991년 당시 천경자 화백이 미인도를 위작이라고 주장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해 단 며칠 만에 진품으로 발표한 것이다. 확실하고 객관적인 물증과 증거 없이 안목감정으로 작가의 주장을 뒤집어 첫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당시 화랑협회 규정에도 “생존 작가의 진위문제는 정신적 이상이 없는 한 작가의 의견을 우선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무시되었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오히려 작가를 정신이상자로 몰아붙였다.

거짓과 납득할 수 없는 증거로 작가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여 과연 전문가의 안목 감정이 작가를 넘어설 수 있을까? 자연과학자가 자연을 창조한 신을 넘어설 수 없듯이, 감정가가 작가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 상식이다. 나도 천경자 회고전을 기획하고 평전을 썼으니 천경자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나 내가 작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얼마 전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했을 때 “평론가는 작가를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 국회의원이 그럼 이우환의 경우를 대며 작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신뢰할 수 없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 그렇다. 천경자는 문제작이 본인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이우환은 문제작이 본인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이럴 때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런 논쟁에서 우선적 결정권은 당연히 작가에게 있다. 그리고 작가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면 꼼짝 못할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작가 스스로 수정하게 해야 한다. 만약 작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내용을 공표해서 증거의 객관성 여부에 따라서 작가에게 도덕적 책임을 전가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증거의 객관성이다. 그런데 미인도의 경우 거짓 소문과 납득할 수 없는 증거로 작가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임으로써 사건을 키웠다. 만약 전문가들의 안목감정에 의해서 생존 작가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전문가들이 담합하면 위작을 진품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거짓 소문의 실체와 객관적 증거를 찾는 데 골몰했어야 했다. 최근 김재규의 집사였던 최종대씨는 JTBC 인터뷰에서 “당시 미인도 액자는 지금 것과 달리 뒤에 받침대가 있는 싸구려 액자였다”는 새로운 증언을 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미인도가 천 화백이 선물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조사해야 할 중요한 증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러한 내용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전문가를 섭외해 안목감정을 하게 했다. 나 역시 감정에 참여해 위작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과학감정을 한 뤼미에르의 위작 주장도 무시되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검찰이 납득할 만한 객관적 증거를 찾지 못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주관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작 해야 할 학술토론회 한번 열지 않으면서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작품의 최고 권위자는 검찰이고, 다음이 전문가, 마지막이 작가의 순서가 된다. 이 반대 순서가 되어야 상식인데, 이 상식이 어떤 정치적 입장에 의해서 뒤집힌다면 부끄러운 선례로 남을 것이다.

진위 논쟁은 언제나 있을 수 있고 전문가들이 공개토론을 통해서 건전하게 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정작 해야 할 학술토론회 한번 열지 않으면서 국가기관이 공권력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앞으로도 힘없는 예술가의 인권을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고 첫단추를 다시 꿰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최광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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