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값비싼 소장품이 위작이든지 혹은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우선 그 미술관의 권위가 크게 흔들릴 것이다. 고가의 그림 값도 복구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무엇보다 향후 미술관의 입지가 매우 불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것도 한 미술관의 어떤 한 작품이 아니고 다수의 미술관이 소장한 다수의 그림들이 그러하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어떻겠는가.

모렐리식 위작판별 기술은 작가의 습관적 세부 묘사에 주목 천경자 위작 시비 끝낼 증거 나와

1870년대 유럽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독일 미술잡지에 이반 러몰리에프라는 무명 학자의 글이 게재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유럽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엉뚱한 작가의 이름 아래 전시되고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그 뒤 글의 저자가 조반니 모렐리임이 밝혀졌는데, 사실 러몰리에프는 모렐리란 이름의 철자를 바꾸어 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위작 판별기술은 후일 ‘모렐리식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모렐리는, 이전 대부분의 미술 감정가들과는 달리, 누구나 인정하는 작품의 가장 명확한 특징을 진위 감정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특징이야말로 가장 모방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컨대 ‘모나리자’의 미소나 페루지노의 ‘성모 승천’에서 천상을 응시하는 눈동자들 같은 것이 그러하다. 대신에 그는 귓불, 손톱, 손가락, 발가락처럼 스타일과는 무관한, 작가의 개인적 습관이 지배하는 가장 사소한 세부묘사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유럽 미술관의 적지 않은 작품들의 진위를 가려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모렐리의 방법은 이후 버나드 베렌슨, 구스타보 프리초니, 장-폴 리흐터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코난 도일과 프로이트 역시 이 방법을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각각 탐정소설과 정신분석에 원용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최근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이를 ‘실마리 찾기’라는 이름으로 미시사의 방법에 차용한 바 있다.

내가 모렐리의 방법을 다시 떠올린 것은 최근 천경자의 작품을 둘러싼 위작 시비를 종식할 새로운 증거들이 나타났고, 이 증거들이 모렐리의 ‘증거들’과 본질상 동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른바 ‘미인도’가 위작 문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91년 봄이었다. 천경자 화백은 즉시 위작임을 밝혔으나, 현대미술관 및 그것과 밀착된 한국화랑협회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것을 진품이라 판정하였다. 심지어 1999년 권춘식이란 인물이 스스로 ‘미인도’를 그렸다고 고백했으나 미술관 측은 여전히 그것이 진품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최근 뤼미에르광학연구소는 그림의 물감 단층을 분석하여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는 결과를 제시했으나, 미술관 측이나 이 사건을 맡은 검찰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가가 명확하고도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그린 게 맞다’고 강변하는 희한한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조지타운대학 미술과 교수인 클리프 키에포와 문병강 교수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천 화백의 작품들 속에는 모방 불가능한 자신만의 ‘코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은 ‘미인도’가 그려졌다는 1977년에 천 화백이 그린 그림 7점을 분석해 천 화백만이 사용한 5가지 코드를 판별해냈다. 즉 홍채 채색 아래 일련의 사선들이 있으며, 인중이 없고, 윗입술에 U자 곡선이 없으며, 필기구로 눌러쓴 스케치 선이 보이고, 인물의 목 부위에 숟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인도’에는 이런 것이 없다. 이로 보아 그것은 틀림없이 위작이다. 키에포-문의 방법은 그림표면 아래의 숨은 코드를 찾아내고자 했지만, 사소하지만 반복적인 특징을 진위 판별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모렐리의 방법을 차용한 것이다. 이 코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는 김정희의 책 ‘천경자 코드’를 읽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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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사설.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