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4월 과천관 소장품 특별전에 위작 논란이 진행 중인 <미인도>를 26년 만에 공개했다. 검찰이 진품으로 결론 내린 지 4개월 후였다. 이에 대해 천경자의 둘째 딸 김정희는 7월20일 <미인도>가 위작임을 논증한 책 <천경자 코드> 출간 기자회견에서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미인도> 전시는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리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미인도>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1년 3월31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 전시회에서였다. 그 사실을 지인에게 전해들은 천경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확인을 요구했다. 자신의 그림에 그런 제목을 붙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인도>를 본 천경자는 “눈에 힘이 없어 얼굴이 허깨비 같다. 코가 벙벙하게 그려졌고, 머리의 꽃이 조잡하다. 이건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미인도가 제작되었다는 1977년은 천경자가 창작에 혼신을 다한 해였다. <수녀 테레사>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나비와 여인의 초상>과 같은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이해에 태어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미인도>는 내 그림이 아니다”라는 천경자의 말을 받아들였어야 한다. ‘미술품 감정의 종결자는 작가’라는 수칙이 국내외 미술계에서 ‘감정의 척도’로 지켜져 왔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 소속 감정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위원회는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을 감정위원에서 배제한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화랑 대표를 5명이나 위촉했다. 감정 결과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했다.

작가에게 작품은 혼의 분신이며 자기 존재 자체이다. 더욱이 천경자는 개념보다는 혼을 창작의 중심에 두는 작가였다. 천경자가 작품 파는 것을 유난히 꺼린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자식 팔아먹은 어미 심정 같다”고 했다. 마지못해 작품을 판 뒤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되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런 작가를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신의 작품을 못 알아보는 정신 나간 작가’로 몰아갔다. 왜 그랬을까? <미인도>가 위작으로 판명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그 사건과 관계된 관료들이 자리를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망한 천경자가 절필을 선언하고 ‘<미인도>는 위작’이라는 내용의 친필 공증서를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난 지 7년 후인 1999년 7월 동양화 위조사건으로 입건된 권춘식은 담당 검사에게 “화랑을 운영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천경자 그림에서 꽃과 나비, 얼굴 형태를 본떠 <미인도>를 그려주었다. 천 화백은 가는 붓으로 물감을 여러 겹 쌓아 두텁게 그리지만 나는 단기간에 완성해야 했기에 두꺼운 붓으로 쓱쓱 칠했다. 한 3일 정도 걸린 것 같다”고 진술했다.

2003년 7월 뇌일혈로 쓰러진 천경자가 언어기능을 상실한 채 누워만 있다가 2015년 8월 별세하자 ‘미인도 사건’이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이 국회에 제출한 ‘미인도 위작 논란 경과보고서’에서 중요한 내용들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2016년 4월 김정희와 공동변호인단은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6명을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고소 고발했다.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가 <미인도>를 감정했는데, ‘진품 확률이 0.0002%’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검찰은 12월19일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납득이 불가능한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의 <미인도> 감정에 참여한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학적으로 천 화백의 혼이 느껴지지 않는 점과, 기법적으로 천 화백과 다른 부분을 10여가지 적어내며 위작으로 판정했다. 그런데 얼마 후 담당 검사에게서 ‘이거 그냥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는 전화를 받고 검찰이 이미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뤼미에르 연구소의 감정 결과도 나오기 전이었다”라고 썼다. 거짓을 지키려면 수많은 거짓들이 필요하다. 미술계 전체가 거짓의 피라미드에 연루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계 권력구조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권력구조를 검찰이 보호해준 것이다.

‘미인도 위작 사건’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떠오른다. 사건의 성격과 형태는 다르지만 국가권력이 진실을 감추려고 거짓의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유린한 점에서 본질적으로 두 사건이 자연스럽게 만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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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사설.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