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의 ‘진품선언’ 기자회견,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강행으로 ‘굳히기’에 들어갔던 <미인도>의 진품 주장에도 일정 타격이 있을 것 같다.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주장에 허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미술평론가 정준모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그가 2015년 11월 <시사저널>에 기고한 ‘<나비와 여인>은 왜 ‘위작’ <미인도>가 되었을까’라는 글이 세상을 떠난 천경자 화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에 압류당한 천 화백의 작품이라며 소장한 <미인도>에 대해 1991년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미술계를 뒤흔들어놓은 이 논쟁에서 정씨가 <미인도>는 진품이 맞다고 주장했고, 천 화백은 자신의 그림도 몰라보는 사람이 돼버린 것이었다. 유가족 측의 고발로 진행된 수사는 이미 2016년 12월에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으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정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미술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재판이 ’비평가의 활동에 재갈을 물리는 처사’라는 의견도 나왔다.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인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미인도’가 18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언론에 공개됐다.
‘미인도’는 19일 개막하는 ‘소장품 전: 균열’ 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이 작품의 일반 공개는 위작논란이 시작된 1991년 이후 26년만이다.
지난해 12월 검찰은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강윤중 기자

검찰의 주장에 반박 못하는 비평가
재판은 화제성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졌다. 검사는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었고, 변호사는 참고인으로 소환된 미술담당 기자에게 빠른 속도로 질문을 쏟아냈다. 이 기자는 문제의 글이 발표된 이후 정씨와 인터뷰를 했다. 변호사의 질문은 크게 두 가지 정황을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정씨의 글이 미술전문가로서의 판단에서 쓰인 글이라는 점, 그리고 언론과 미술계에 대한 유가족 측의 압박 때문에 해당 그림이 진품이라는 의견이 나올 수 없었다는 점이다. 기자도 변호사의 관점에 동의했다.

“참고인은 이 재판이 왜 열렸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재판의 분위기는 검사의 짜증 섞인 한마디에 깨졌다. 정씨가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견과는 상관없이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기소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정씨를 포함한 6인의 고발건에 대해 정씨를 제외한 나머지 5인에게 무혐의를 선고하면서 <미인도>는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정씨는 글에서 <미인도>가 진품임을 주장하면서 네 가지 근거를 들었다. 첫째, 천 화백이 그림이 인쇄된 포스터만 보고 위작이라고 주장했다는 점. 둘째, 그림은 1990년대에 출간된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회화선집’에 수록됐는데, 이 책의 제작에 작가도 관여했다는 점. 셋째, 이미 법정에서 그림의 위작 여부는 ‘판단 불가’라는 판정을 내렸다고 주장한 점. 마지막,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진품이라고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한 점이다. 검찰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해당 그림을 가지고 천 화백을 방문하여 작가 감정을 받은 작품이었다. 천 화백은 ‘한국근현대회화선집’ 제작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또 2015년까지 <미인도>의 진위 여부에 대해 어떤 법적 공방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 불가’라는 법원의 판결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KIST의 감정은 각각 필적과 안료 분석을 통한 진위 판단이었는데, 이들 기관이야말로 ‘판단 불가’ 판정을 내렸다.

검찰 측에서 제출한 증거자료에 대해 정씨와 변호인 측은 뚜렷한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적 판단에 근거해 글을 썼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너무나 손쉽게 거짓이 드러나는 주장을 늘어놓은 것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 사이에 오고간 공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화랑협회를 통해 감정서를 요청했고, 1997년 9월 27일에 “미술품보존연구소에서 안료검사(채색) 및 필적검사를 한 결과 진품인 것으로 확인”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연구소는 1991년에 해당 작품을 감정한 사실이 없었다. 당시 화랑협회에서 진행한 감정은 화랑주와 일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작품을 눈으로 보고 감정한 ‘안목감정’이었다. 화랑협회에서 거짓 감정서를 보낸 것이다.

유가족측 재수사 요청, 재논란 불가피
이 감정서는 그 뒤로도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김태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는 “1991년 4월 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국내의 유명 미술보존연구소에 안료검사와 필적검사를 의뢰한 결과 진품임을 확인”했다고 적혀 있었다. 해당 자료를 제출한 담당자는 ‘전임자가 남겨놓은 자료와 그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임자’는 바로 정씨였다. 그는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했고, 같은 해 ‘<미인도> 진위 공방에 대한 보고’, ‘천경자 작, <미인도> 위작 시비 관련 경과보고’라는 두 건의 문건을 작성했다. 그는 2004년에도 ‘천경자 작 <미인도> 보도요청 관련 보고서’라는 문건을 한 차례 추가로 작성한 사실이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 재판은 서울중앙지검의 ‘진품선언’ 기자회견,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강행으로 ‘굳히기’에 들어갔던 <미인도>의 진품 주장에도 일정 정도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주장에 허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유가족 측은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하고,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23일에는 민사소송도 새롭게 제기했다. 일단락된 것 같던 논란은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불편한 질문이 하나 더 남는다. 정씨는 무슨 의도로 이 글을 쓴 것일까? 지금까지의 상황과 자료를 미뤄 볼 때, 정씨의 재판을 두고 ‘비평이 법정에 섰다’는 반응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사실에 기반한 주장이 아니라면 그것을 비평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가 이 사건의 이해당사자 중 한 사람이라면 그의 주장을 단순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미인도>를 지켜본 전문가의 식견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전문가로서 갖춰야 할 윤리에도 의구심이 더해지고 있다.

유가족 측은 정씨가 화랑협회와 공모하여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근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화랑협회의 감정역량이 부족함을 넘어, 위조품 판매를 방조해 왔었다는 의심은 여전히 미술계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화랑가에서 일하던 A씨는 필자에게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언젠가 사장이 먼지 쌓인 천경자 작품을 트렁크에 싣고, 어디론가 전화하며 나가는 모습을 봤어요. ‘이거 꼭 진품 판정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요.” <미인도> 역시 이러한 과정으로 진품이 된 위작일까?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이 그림을 진품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제시한 근거 상당 부분이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권혁빈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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