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천경자 화백의 유족과 공동변호인단은 서울지방검찰청에 국립현대미술관 전 현직 관계자들의 고의적 허위사실유포,  천경자 화백 명예 훼손 혐의를고발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결과 모든 혐의가 사실로 들어났음을 인정하면서도 <미인도> 진위 판정을 앞세워 사건의 핵심인 비리수사결과에 대해서는[1]일절 입을 다물고,  피의자 여섯 명 가운데 한 명만 기소 처분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허위주장들이 시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새로운 거짓말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음은 이제까지 현대 미술관과 화랑협회가 고의적으로 유포해 왔던 거짓말 및 허위소문들에 대한 바로 잡음입니다.

 

1.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 실물을 보지도 않고 확대된 포스터만   보고 위작이라 했다.”-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들

1991년 3월 31일 경, <미인도>라는 제목의 그림이 천화백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이 주관한 전시에 포함되어 있다는 친지의 전화를 받은 즉시 천화백은 국립 현대미술관에 연락해 <미인도> 실물을 가져오게 했다. 국립현대술관엔 천경자 화백의 작품으로는 <청춘의 문>(1968) 딱 한 점만 소장되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천화백으로서는 당연한 의구심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와 포스터를4월1일 천화백 자택으로 가져 온다. 천화백은 그 자리에서 조목 조목 자신의 작풍과 다른 점을 지적하면서 위작이라고 천명한다. 따라서 천화백이 <미인도>를 감정한 것은 4월 1일이며 위작 논란이 처음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 보도된 것은 4월 4일이었다. 현대미술관 기자회견에서(4월 12일) 이경성 관장은 4월 1일 천경자 화백에게 그림을 가져갔으며, 사흘 후 다시한번 가져갔음을 보고한다. 기자회견 동영상에서도 확실히 밝혀진 사실이다.

 

2. 천화백은  그 이전에도 <인도의 무희> 라는 작품을 위작이라고 주장했으나 철회했다는 악성 루머.

1991년 3월, 강남의 J&C 화랑에서 신춘 기획전을 열었는데 천화백의 <아그라>의 무희를 베낀 <인도의 무희>라는 스케치화가 등장한다. 천화백이 이 그림이 위작임을 발견하고 항의하자 화랑 주인은 모든 팜플렛을 폐기하고 그림을 내린 일이 있었다. 그림의 출처와 관련해서 화랑대표 이모씨가 천화백에게 “한번만 살려달라”고 하면서, “타작이 나갔다고 검찰에 말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천화백은 그 그림이 가짜이기에 그 부탁을 거절했다. 당시는 대규모 위작단 검거사건 (서울 중앙 지검 특별 수사 제 2부 김성준 검사)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화백은 가짜 그림 확인차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한 자리에서 <인도의 무희>에 대해 언급했으나 <인도의 무희>에 대해  고소나 고발이 있었거나 검찰에서 따로 입건한 바는 없었다. 그러나 그 가짜 그림은 폐기된 것으로 믿었는데  그 그림은 제3자에게 팔렸고 천화백이 미국으로 이주 한 후 2000년 12월 화랑협회에서 진품감정서를 발부한 사실을 이번 위작미인도 사건의 불기소이유서(2016년 12월)를 통해 유족은 알게 되었다. 화랑협회는 엄연히 작가가 생존해 있고, 작가가 이미 가짜라 천명했던 그림에 대해, 작가도 모르게 진품이라는 감정서를 발부한 것이다. 화랑관계자들이 <인도의 무희>에 대해 천화백이 위작 주장을 철회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나 이 사건 <미인도> 진품판정에 열을 올리는데는 불순한 동기가 내재한 것이다.

그 이후 피의자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중심으로 천화백이 ‘인도의 무희’에 대한 위작 주장을 번복했다는 내용이  기고나 인터뷰를 통해 퍼져나갔다.

그러나 천화백은 지속적으로  여러 언론 인터뷰(여성동아 1991.5월호 / 경향신문 1996.05.01)등을 통해 <인도의 무희>가 가짜임을 거듭 확인했다.

 

3. “동산방 표구소 제작 미인도의 액자에는 126이라는 이 화방 고유 일련 번호가 있다.”

이  거짓말은 당시 현대 미술관이 내세운 미인도 진품 주장 이유 중 큰 이유였다. 그러나 일련번호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감정위원이기도 했던 박주환 동산방 대표는, 일련번호라는 것은 없다고 양심선언을 했고, 목공소에서 짝을 맞추기 위해 적어놓은 연필 글씨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일련번호라면 액자뒤를 종이로 다 마감한 후 붙이지 왜 액자틀 목재위에 연필로 휘갈겨 썼겠느냐고 반문했다.

위작범들이 화가의 단골표구사에서 표구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박주환은 표구는 우리 표구사에서 한 것이 맞으나, 그것을 누가 맡기러 왔는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라고 KBS 이정옥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여기서 그는 또 ‘오랜 세월 선생님을 옆에서 모셔온 사람으로서, 선생님은 기억력이 좋으시며, 성격상 일부러 거짓을 얘기할 분이 아니다’라고까지 증언한다. (동영상 증거 존재)

하지만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일련번호주장에다 덧부쳐 빨간 펜으로 ‘천경자’라는 이름이 씌여져 있다 라는 허위까지  언론 기고를 통해 유포했다. 정준모는 1996 년 부터 2005년까지 현대미술관의 학예실장을 역임했으며 2005년에서 2006년까지 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장을 역임한 사람으로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미인도>의 표구를 얼마든지 확인할 위치에 있었던 자로, 이와같은 거짓말을 유포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해당된다.

 

4. 천화백 사후 2015년 11월 경 국회 김태년 의원실의 요청에 의해 제출된 국립현대미술관의 보고서는 여러가지 고의적인 허위를 담고있다. 고소인측은 장엽 현대미술관  학예 제2 실장과 김 정배 당시 관장 대행을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소 고발하였다.

이 보고서는 여러가지 허위 기재 사실중 특히  유준상 당시 학예실장과 박래경 학예관이 천경자 화백을 방문한 자리에서 “천화백이 <미인도>가 진품이라 시인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는 황당한 진술을 하고있다.그러나 이것은 금방 허위로 들어났다.

박래경 학예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인도> 관련해서 천화백을 방문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또 이경성관장의 기자회견에서도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그는 유준상이 배석한 자리에서, 유준상이 다녀왔으며, 천화백이 위작이라 천명한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힌다.

5. 국회에 대한 보고서 작성자는 동작품이 1990년 1월 발행된장우성 천경자 2인 화집(금성 출판사, 서울)에 실려있으며  “작가도 편집단계에서 확인한 바 있음”이라고 보고한다.   정준모 전 학예실장도 비슷한 내용을  언론에 유포했다.  그러나 이는 허위임이 이미 밝혀졌다.

박래경 학예관은 그 화집의  뒷편에 실린 평론을 쓴 사람으로  정작 글을 쓴 장본인도 본인의 글에 <미인도>의 흑백사진이 게재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하며 당시 금성출판사 화집의 편집자였던 이구열은, 천화백은 화집 편찬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며, 칼라 도면이라면 몰라도 흑백 삽도까지 의논하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 슬라이드가 천화백에게서나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사진은 현대미술관에 가서 찍어왔다고 확실히 증언했다.  (2016년 2월 방영 SBS 스페셜)

 

 6. 국회 보고서에서 참조물로 제시하고있는 정준모의 시사 저널 기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 등지에서 시료를 분석하고 요란 법석을 떤 끝에 다시 진품 결론이 내려 졌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 또한 허위임이 당시의 신문기사, 최근의  JTBC 방송보도등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또한 정준모는 이 사건이 “법정까지 갔으나 판단불가 결론이 났다고 엉뚱한 허구를 들먹인다.

 

7. 국회질의에 대한 답변서에는 또한 당시 “국내 유명 미술 보존 연구소가(최명윤 연구소를 지칭함) 감정위원회의 의뢰로 안료검사와 필적검사를 한 결과 진품임을 확인했다”는  진술도 나온다.

최명윤은 최근 당시 본인의 사무실에 그럴만한 장비조차  없었다고 부인했다.

 

8.또한 현대미술관의 국회 보고서는 <미인도>에서 나온 “호분       성분이 진품임을 증명한다”고 밝힌다.

호분은 학생들을 포함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은 누구나 쓰는 가장 흔한 재료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다는 것은 이 기관의 전문성이나 당위성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게다가 이미 1991년 현대미술관의 보존과학실장은 안료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시인한 바있다.

 

9. 당시 화랑협회 감정이란 어떤 것이었는가.

미인도 사건 발발 직후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 4일 당시 친목단체에 불과했던 화랑협회 산하 감정위원회에 <미인도> 감정을 맡긴다.송향선 박주환등 아홉명의 감정위원이 여기 참여했다.

감정위원들은 두 차례 감정결과 발표를 유보했다가, 4월 11일,위작이라는 것이 앞으로 밝혀질 경우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단서와 함께 진품 판정을 내린다. 그런데 발표는 감정위원장이 아닌 화랑협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서 했다.

그전에 김창실 화랑협회장은 ‘가짜그림 소동’ 이라는 제목의 글을 한국경제신문에 (1991.04.07일자)기고했다. 이 칼럼은 ‘흰 머리 날리며 미술계에 한 평생 바쳐오신 이경성 선생님에게 [이 미인도 사건이] 누가 되지 않기를 빌며” 작가의 착각이었기를 바란다는 이경성 현대미술관장에 대한 아부성 짙은 내용이었다. <미인도>에 대한 화랑협회 감정이 실시되고 있던 중에 벌어진 일로 제대로된 감정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화랑협회장이 발표한 진품이라는 논리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꽃이며 나비며 천화백의 다른 그림에 나오는 요소들이 이 그림(미인도)에도 나오며, 천화백은 이런 꽃을 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꽃은 내가 즐겨 그리는 푸르메리아라는 꽃이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테크닉이 있어 꽃이 하늘 하늘할 때 까지 그리지 이렇게 더덕 더덕 칠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왜곡해서)  다른 그림에도 이 꽃이 나오며

다른 그림에도 검정 머리(“나는 머리도 처음에 다른 색을 칠한 후 오묘하게 진한색을 만들어 가지 이렇게 개칠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왜곡하여) 가 나온다 등이 진품 이유였다.

그들은 같은 시대 천화백의 진품과 비교해 보기는 커녕 아무런 미학적 분석 없이 오직 ‘감’ 으로 (당시 화랑협회장과 박주환 위원의 시인) 결론을 내렸다.

10. 김창실 화랑협회장은 “만장일치”로 감정위원들의 진품판정이 나왔다고 했지만 감정위원은 원래 아홉명이었다.

발표당일 박명자 현대화랑 대표 포함 두명이 탈퇴해 일곱명이 된것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당시 졸속감정에는 길을 가다 불려들어가 갑자기 감정위원이 된 사람도 있었으며 가짜라는 의견을 낸 사람은 초기단계에 배제되었다.

 

11.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거짓말들.

  • <미인도>의 곰팡이: <미인도>의 그림 전체에 얼굴 포함 모두 100여군데 이상 곰팡이가 덮힌 피해에 대해 현대미술관 측은 아교 사용때문이며 천화백의 다른 그림에도 같은 곰팡이들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화백은 평생 아교를 사용한 진채화의 대가이다. 물론 그의 작품에는 <미인도>와 같은 곰팡이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단층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 <미인도>에는 “비싼 석채가 사용되었으며 그당시에는 석채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천화백의 제자들은 이미 60년도에 석채사용법을 배워 석채를 사용했다고 증언하며 70년대에는 석채 구하기가 더욱 쉬웠다고 말한다. 또한 석채라고 다 비싼 것은 아니다. 또  많은 화가들이 분채와 석채를 같이 쓰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70년대에 이미 석채로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많았다. 현대미술관은 무조건 “석채”가 발견됐다고 이것이 천화백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는 황당한 주장이다. 어떤 종류의 석채가 얼마만큼 발견됐는 지는 밝혀진 바 없다. 천화백은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유려하고 풍요로운 색감이다. <미인도>의 색상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빈약하다.

 

위의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화랑협회와 현대미술관이 이제까지 끈질기게 이용해온 방법은 사실이아닌 소문을 만들어내 천경자 화백의 인격을 짓밟고 국민을 오도하다가 허위라는 증거가 드러나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수법이었다. 게다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까지 자기들이 만든 소문을 아무 거리낌 없이 기술했다. 이러한 명예훼손사실을 규명해달라는 것이 유가족의 고소 고발  내용이건만, 검찰은 피의자 신분인 현대 미술관과, 이사건에 지대한 이해관계를 갖고있는 화랑협회관계자들의 진술에만 의존,  편향된 수사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Category유족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