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31일경

천경자 화백이 지인 박현령 시인으로부터 전화 받음.   현대건설 지하에서

‘움직이는 미술관’이란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천 화백의  작품이라고 명시된 <미인도>라는 그림을 보았고, 그림이  천 화백 작품 같지 않고 제목도 천 화백의 그림들과 너무 다르다고 전화. 현대미술관으로 부터 어떤 통보도 받은 적이 없고, 미인도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천 화백은 현대 미술관에 전화해 그 그림 원본과 포스터를 가져오게 함

1991년 4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직원이 압구정동 한양 아파트 26동 506호 천 화백 자택으로 ‘미인도 그림 원본’과 포스터를 가지고 옴. 천 화백은 원본을 직접 자세히 보고 그 자리에서 가짜임을 명확히 밝히고, 가짜 그림이니 돌려줄 수 없다며 국립현대미술관에 돌려주기를 거부.

1991년 4월 2일  

현대미술관 학예관 이인범이 전 날 미술관 직원이 가져온 그림을 찾으러 천 화백 자택을 방문했으나, 천 화백을 만나지 못하게 되자 자필 메모를 남기고 감. 이 메모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됨.

  1. 어제 저희 직원이 가지고 온 작품은…
  2. (천)선생님께서 귀한 시간을 내시어 감정을 해 주신 것을 어떻게 감사 드려야할 지…
  3. 불행하게도 이 위작 작품을 저희가 갖게된 것은 80년도 였고…
  4. (작품을 타 부처에서 이관 받을 때)…평론가, 전문가 등의 심의과정이 없었습니다.

(증거자료 : 학예관 이인범의 메모사본)

보충설명

- ‘움직이는 미술관’은 문화공보부(당시 이어령 장관)의 지시로 미술대중화를 위해 현대미술관 소장작의 일부를 인쇄물(복사품)을 만들어 액자를 하여 전시함과 동시에 포스터와 함께 인쇄물을 판매한 것인데( <미인도>는 복사품 9백장을 5만원씩 판매하였다고 함), 이 과정에서도 천경자 화백의 동의를 구한 적이 없었음.

- 위작 ‘미인도’ 원본이 현대미술관에 들어온 경위가 1980년도 문화공보부에서 이관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관받을 때도 전문가의 심의과정도 없었고 엄연히 생존해 있는 작가 천경자 화백에게 확인한 사실도 없었음 (증거 조선일보 기사, 학예관 이인범의 편지)

- 이관 된 후 1980-1990년까지 현대 미술관 수장고에 묻혀 있었으며 이 기간 동안 공개된 적이 없었고 학예관들도 그 그림의 존재여부를 몰랐다고 함(박래경 전 학예관 증언)

1991년 4월 03일

현대미술관 직원들이 천 화백집을 방문하여 그림을 찾아 감.

1991년 4월 4일

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유준상, 보존과학실장 강정식, 전시과장 등 세명이 문제의 미인도 그림과 오리지날  액자라는 다른 액자를 가지고 재차 천 화백 자택 방문. 동산방 표구소에서 제작했다는 액자를 천경자 화백이 보는 앞에서 갈아 끼워 보여줌. 그러나, 천 화백은 가짜라고 다시 한번 천명.

이 당시 천 화백이 “(조야한 그림이) 액자를 바꾸니 좀 매끄러워 보인다”라고 말하였을 뿐인데 그 후 현대미술관 직원들은 “좀 매끄러워 보인다”라는 말을 빌미로 천 화백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인정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리기 시작.  그러나 1991년 4월 12일 열린 이경성 현대미술관장의 기자회견에서, 이경성 관장은 유준상 등 천 화백 자택을 방문했던 직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KBS 이정옥 기자의 질문을 받고, 천 화백이 시인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작가가 완강히 가짜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확인했음. 다만 액자를 바꾸니 좀 매끄워 보인다 했다고 설명. 그 자리에서 유준상에게 “유실장이 다녀왔지?” 하며 동의를 구하니, 유준상은 이경성 관장의 말에 수긍하면서 카메라 앞에 나와 천 화백을 방문한 사실에 대해 부연 설명(증거자료: 이경성 관장 기자회견 동영상).

보충설명
<보충설명>

1991년 4월 4일 당시의 현대미술관의 입장을 보여주는 관련 기사

“국립 현대미술관 가짜 모른 채 소장”이란 제목하에 문제의 미인도가 복제품 9백장이 5만원씩 판매된 사실,  80년 4월 문공부를 거쳐 현대미술관에 소장될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측은 “문공부로부터 작품을 넘겨받으며 전문적인 감정 절차등을 거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시인하면서, “천 씨와 미술관 관계자들이 협의, 감정절차를 거쳐 가짜임이 확인될 경우 폐기처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위 조선일보 기사에서 보면, 이 당시만 해도 현대미술관은 미인도 이관시

전문적인 감정을 거치지 않은 사실도 시인했고 가짜임이 확인되면 폐기처분하겠다는 입장이었음. 그러나 후에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라’는 상부의 압박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음 (증거: 2016. 2. 14. 자 SBS 스페셜)

1991년 4월 4일

현대 미술관,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의뢰.

현대 미술관의 의뢰를 받은 화랑협회는 급속으로 감정위원회를 조직 미인도 감정에 들어감. 그러나 천 화백의 동년대 진품과 비교해 본다든가 하는 어떠한 합리적인 노력도 없었고 일단 ‘감’으로 진품이라 판정했다는 것이 당시 감정위원들이었던 동산방 대표 박주환, 화랑협회장 김창실의 말이며, 그 중에는 인사동 길을 지나가다 불려들어가 갑자기 감정위원이 된 사람도 있었음.

어느 신문에는 감정위원들이 일단 감정회의를 한 뒤 천 화백의 도록 등 자료를 수집하러 뿔뿔히 흩어졌다는 보도도 있었음.

1991년 4월 8일

KBS의 8일 저녁 9시뉴스, 이정옥 기자 보도로 현대미술관 수장고에서 직원들이 취재 방해하는 장면 등 방영.

MBC 피디수첩 방송에서, 미술관 강정식 과학보존실장은 “안료 검사를 했지만, 그 안료는 모든 사람이 쓰는 것이므로 사실 아무런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시인

기타 여러 방송과 언론에서 이 사건 보도와 함께 천경자 화백의 인터뷰가 나감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있겠느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그림은 내 그림이 아니다”) (증거 자료: KBS, MBC 방송 테이프)

천 화백은 이들 방송 인터뷰에서, 작품은 작가의 분신과 같으며 온갖 심혈을 기울여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 천 화백 본인이 오랜 세월 작품생활로 이룩한 테크닉 등을 설명하며 이 작품이 가짜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음

미인도가 천 화백의 작품과 다른점〉- 천경자 화백 작가 본인설명
1. 1991년 4월 8일. KBS 문화부 이정옥 기자와의 인터뷰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 심장을 부딛혀가면서 하는게 작품생활이 아니겠어요. 모든 예술이 그러다시피. 그런데 이건 막 보니까 허깨비 같고, 기가 콱 막히고요. 이 꽃도요. 제가 즐겨서 그리는 꽃의 하나입니다. 부루메리아라고요 남방계에서 피는 꽃이고… 막 보니까. 그걸 뭐랄까. 테크닉이 말씀입니다 ‘더더억 더덕’하게 되어있어요.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말끔하게 하거든요. 그게 좋아서. 그 점이 틀리고요. 눈같은 것도 한없이 오래 그리다 보니까 어떤 광이 보일 때까지 그리게 되고,  (이 가짜 그림은) 모든 게 엉성한 그림이에요. 제가 악을 쓰다 시피했어요. 가짜다! 하고.


(사인 옆의 1977 이라는 연도가 씌여진  숫자를 가르키며)  제가 이상한 건,  천 9백의 9자는 제가 이렇게 쓸데가 있어요. 그런데 7자는 이런식으로 써본 기억이 없어요. (손가락으로 그리며 ) 저는  (7자를) 이렇게 쓸데도 있고 또 이렇게 쓸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쓴 기억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색감을 내는데 있어서 처음에 엉뚱한 색깔을 칠합니다. 머리에다. 갈색이라든지 황토색이라든지 그래 가지고 점점 더 그림을 검정색으로 짙게 만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건 한가지 색깔로 다 칠해버린 느낌이 있고.


그리고 눈에도 힘이 없고요.


대개 제가 코같은데도  (본인 콧망울을 가르키며) 사실적으로 보면 여기가 높잖아요. 그래서 여기에 하얀 색을 넣어요. 그런데 (미인도를 가르키며) 코도 벙벙하고.


그런 걸 일일이 말할 필요도 없이 팍 오는게 없어요. 약하고.. 이게 자기 분신이고 자기 자식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그리기 때문에.  저는 몇 년전 부터 방문 열고 들어 올때 (그때 무슨 그림이든 걸려있는 그림을 향해) 집 잘봤냐 하고 들어옵니다. 그 정도로 제가 그림하고 밀착되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저 그림.


(제 색깔은) 그나름대로 중후감도 나고요. 보라색이면 보라색, 거기에 노랑색이 곁들여 질 때 미묘한 맛이 나거든요. 가라앉은듯한 색감이. 그런 맛을 내며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리했더라면 여기를(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이렇게 더럽게 처리 안했어요.


2. 1991년 4월 12일 감정결과 발표 며칠 뒤, MBC  PD 수첩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혼이 여기 박혀 들어가는, 자기는 의식을 안하지만은,  그래야 그 사람 그림이라고 보는데..어느 그림이든 볼 때마다 확 오는게 있습니다, 자기 그림은. 그런데 (이 그림은)혼이 없어요, 껍데기에요.

가령 자기가 배아파 낳은 자식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자기가 낳지 않은 자식이 와서 엄마라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요.


제 나름대로 테크닉이 있거든요. 방법이 있어요. 꽃을 그리는데.

(천 화백 그림 중 한 작품인 여인상의 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들하들한 기분이 있죠? 그러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거에요. (화면에 미인도의 꽃과 나란히 비춤) 비교를 해 보시면 아시잖겠습니까. 제가 설명을 안드려도..저는 저렇게 투박하게 꽃을 그리지않습니다.


(액자에 대하여) 다른 사진같은 데 찾아보면 저것과 색깔이 비슷한 다른 작품들이 있어요. (카메라에 진한 단색으로 비단을 댄 같은 연도 작품 액자들이 잡힘) 그런데 그런 무늬가 있는 그런 비단을 써 본일이 없습니다.


( 미인도의 머리 갈기 같은 부분을 가르키며) 이런데도 저는 이렇게 처리를 안해요. 그리고 눈(눈 부분을 가르키며), 제 눈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좀 광이 있어요. 그런데 이 눈은 전혀 범벅 아닙니까 (카메라: 천화백의 같은 시대 여인상의 눈을 보여줌)


그리고 입이 또 전혀 틀려요. 제(가 그린) 입하고요.

배경 처리도 보세요. 제가 이렇게 엉성하게 처리 안한다고요.

이건 또 뭐에요. (미인도의 어깨 부분 바탕의 검은머리 색이 어깨 살색 밑으로 꺼멓게 드러나는 것을 가리키며)  여기가 밝아야 되거든요. 입같은 것. 제(그림의) 코랑 비교를 해보시면 아시죠. (이 그림은)남의것을 보고 그린 모작이라고요.


3.  91년 4월 여성동아 인터뷰

채색화는 꽤 공부한 사람이 그린 것 같은데 제 그림과는 많이 달라요.


우선 어깨위의 나비는 덧칠한 흔적이 보이고 입술은 종이를 오려서 붙인 것 같아요. 또 코에는 그늘이 없습니다.


머리칼 색깔도 거의 검은색인데 저는 이렇게 단순하게 색처리를 하지 않습니다.


머리위의 꽃을 보세요. 저는 꽃을 하늘하늘하게 그리지 이렇게 뭉친 것 같이 그리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꽃이 지저분하게 보여요

1991년 4월 10일  

화랑협회 감정발표를 앞두고 송향선, 박명자, 박주환 등 네 명의 감정위원들이 천 화백 자택 방문. 천경자 화백은그 자리에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그림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다시한번 강력하게 입장 천명.

김창실 화랑협회회장은 미인도 사건이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와중에 4월 7일자 <한국경제 신문>의 여성칼럼에 글를 기고함. (‘흰 머리 휘날리며 한 평생 미술계에 몸 바쳐온 이경성 관장님께, 이 미인도 사건이 누가 되지 않기를 손 모아 빈다’는 내용이 게재됨).

당시 화랑협회회장인 김창실은 선화랑(77년 개관)의 대표였음. 이경성 현대미술관장과의 유착된 관계를 입증하는 증거로 이경성 관장은 선화랑의 고문을 역임했고, 선화랑의 상호를 작성해 주었으며, 화랑전시 기획에 관여했음. 유준상 학예실장은 선화랑 발행 <선 미술>의 주간을 역임했음 (증거자료: 경향신문 1995년 3월 17일 자 기사)

1991년 4월 11일

화랑협회장 김창실이 기자회견을 열고 감정결과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발표. (김창실은 감정위원이 아니었음). 그는 “작가 천경자 선생은 이 작품이 절대적으로 ‘위작’임을 주장하고 있음을 본 화랑협회가 공식으로 확인”하였다는 확인과 함께 “감정결론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앞으로 위작경위가 밝혀지면 받아들일 것이다”는 취지의 문건을 배포함 (증거자료: 문건 및 동영상)

김창실 회장은 감정위원들이 ‘감’으로 진품으로 인정하였다고 시인하면서,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인정한 근거로, 1)그림에 동산방 화랑 시리얼 넘버가 있다는 허위근거(동산방 화랑 박주환 대표가 시리얼 넘버가 없다는 고백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를 제시하고, 2)천화백이 이 위작그림의 원작이 되었을 수 있는 그림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완전 왜곡하여 상식이하의 논리를 끌어다 댐. 즉 천화백의 다른 그림에도 머리의 흰꽃, 어깨의 나비, 검게 칠한 머리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 논리였음.

천 화백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전에 미인도와 비슷한 그림을 둘째 딸을 모델로 그린 적은 있으나 그 작품은 미인도보다 워낙 작은 작품이라 어깨에 나비를 그려 넣지 않았을 거로 생각되며 머리에 (그 그림에는) 흰꽃을 그리지 않았다”고 했음. 또한  “자신은 검은 머리색을 낼 때도 먼저 다른 색을 칠한 후 점점 검게해서 묘한 색을 내는, 나름대로의 테크닉이 있다”고 말하고 “하지만 이 미인도라는 그림은 머리를 개칠하듯, 그리다 만듯한 그림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음.  천 화백은 꽃과 나비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어 ‘나비를 그린 적이 없다, 흰꽃을 그리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했다는 것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음.

그럼에도 김창실회장은 미인도가 천 화백의 진품이라는 논리로

“천선생님은 자기는 하얀꽃을 그린 적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도 있지 않아요?” 하고 ‘바리의 여인’ 이라는 스케치를 가르키고,

“그리고 천 화백은 나비를 그린 적이 없다고 했는데 (작품 ‘고’를 가르치며) 여기도 나비가 있지 않아요?”

“또 머리에 개칠을 하지 않는다 했는데(역시 ‘고’를 가르치며) 여기도  까만 머리가 있습니다”라고 발표함.

1991년 4월 12일  

국립현대미술관 이경성 관장 기자회견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중간발표. 이 관장은 “천 화백이 절대로 진품이라고 시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앞으로 위조범이 나타난다거나 가짜로 밝혀질 경우 모든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함.

KIST(한국과학기술원)와 국립과학연구소에 필적 감정 및 안료 시험 분석을 의뢰하여 추후 발표한다고 했으나, 곧 국과수의 회신(불가) 및 KIST 회신(누구나 쓰는 안료이므로 진품의 근거가 될 수 없다)을 받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 오히려 나중엔 “국과수와 KIST 감정결과 진품으로 확인되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기 시작.

관련 기사

1991년 4월 스포츠조선 :

과학적 진위파악 불가능

16일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의뢰한 ‘미인도 감정’에서 안료검사를 의뢰받은 KIST는 “이 안료는 누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료1검사만으로 문제의 진위파악은 어렵다“고 통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도 일반필적과 달라 감정이 어렵다고 밝혔다.

1991년 4월 19 한국일보 :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안료검사만으로 진위파악이 어렵다’는 사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필적감정을 하더라도 작가의 기분에 따라 서명이 달라지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감정이 어렵다’

1991년 4월 12일

현대미술관 이경성 관장의 기자회견이 있기 직전 KBS 이정옥 기자는 동산방 대표 박주환(당시 감정위원 중 한명이며 현대미술관에 감정위원회 대표로 결과를 통보한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 일련번호의 진실을 밝혀냄.

박주환은 인터뷰에서 “시리얼 넘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목공소에서 짝을 맞추기 위해 편의상 연필로 써놓은 숫자에 불과하다. 현대미술관 측에서 본인에게 물어왔을 때도 그것은 시리얼 넘버가 아니라고 말했으며, 감정결과를 발표한 김창실회장이 시리얼 넘버를 근거로 든 것은 잘못이다”고 증언 (증거자료: 박주환 인터뷰 동영상).

1991년 4월 16일

천 화백,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입장을 재천명함. (KBS 뉴스 보도)

미인도 사건 발표 후 한국화랑협회의 오판, 불신 관련기사
1991.4. 17. 경향신문 :
현재 우리나라 미술품감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고미술협회와 한국화랑협회(산하 감정위원회)는 민간단체 설립. 운영 감정기구에 불과하여 법적인 효력도 없고, 두 단체의 감정능력은 육감에 의한 원시적인 감정방법으로 오판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한국화랑협외 감정위원회가 김환기의 가짜그림을 진품으로 판정했다가 이 그림을 그린 위작범이 잡히자 위작으로 번복한 사례도 있다.

1993.5. 8. 중앙일보: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는 이중섭의 황소 작품 2개에 대해 위작이라는 평가를 내렸으나 감정위원중 한 사람이 화랑측에 호당 1천만원에 되팔 것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져 감정결과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

1999.7. 26. 일요신문:
당시 감정위원들 입장 :

당시 감정위원회는 급조된 상태에서 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들은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참석하기도 했던 것, 천 화백의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문을 예상치 못한 채 ‘감’으로 감정을 한 감정위원도 있었다.
이영찬씨: 천화백의 화집 등을 살펴보고 확대경 등으로 봤던 것 밖에 없었다. . 감각으로 봐서 진품인 것 같다고 했다.

동국대교수 송영방씨: 본인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본인만큼 자기 그림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미인도는 자세히 보면 천 화백의 명확하고 활달한 선이 안 나타나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감정위원회에 나간 것이 후회스럽다.

2007.4. 4. 중앙일보 :
국내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위조해 판매한 일당 구속

미술품 판매상 복모씨는 화가를 고용해 이중섭.천경자.변시지.이만익 등 유명 화가 그림 위조한 변시지씨의 '조랑말과 소년'은 한국미술품감정위원회에서 진품으로 감정됐다가 뒤늦게 작가 본인이 "내 그림이 아니다"고 밝혀 감정 결과를 번복하는 일도 벌어졌다.

2015년 10월

천경자 화백 추도식으로 인해 미인도 사건, 다시 부상함.

2015년 11월: 전 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정준모는 고 천 화백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허위사실을 <시사저널> 등에 연속 게재.

2015년 11월

국회 김태년 의원 등이 현대미술관에 보낸 질의서에 대하여 현대미술관은

<미인도> 관련해서 명백한 거짓을 기재하여 허위 공문서 제출.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천 화백이 현대미술관 학예관 유준상, 박래경 앞에서

<미인도>가 진품이라 시인했다는 것. 그러나 이는 완전 거짓말임로 드러남. 1991년 당시 이경성관장 기자회견 동영상을 봐도 금방 알 수 있지만, 2016년 3월 중앙일보 유길용 기자는 박래경 전 학예관을 인터뷰, <미인도> 관련 천화백을 방문한 적도 없다는 증언을 보도함.

http://news.joins.com/article/19800825

 

2015년 12월

JTBC가 <미인도> 관련 일련의 뉴스 방영

표구소 동산방의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는 동영상, 그리고 국립과학 수사연구소 등의 과학적 검증이 있었다는 현대 미술관 측 주장과 달리, 국과수 등에서 검사한 적조차 없었음을 밝혀냄.

 

2016년 2월 14일

<SBS 스페셜-소문과 거짓말> 방영

SBS는 당시 감정위원회가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내린 감정과정에 의문점이 많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관련자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함. 제작진은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동영상, 문건, 그리고 수 많은 관계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진실 규명에 나섬.

이 추적 프로그램에서  여러 미술계 인사들이 미인도가 가짜인 이유를 설명하고, 평소 천 화백이 보였던 작품에 대한 남다른 집념과 창작과정의 특징, 강직한 인격등에 대해 증언함. 반면 정준모, 유준상, 이인범등 현대미술관 관련자들과 송향선등 화량대표들은 카메라를 피하거나 답변을 회피함.

 

2016년 3월 27일

천 화백 차녀, 바르토뫼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서한 보냄. 외국인 신임관장에게  <미인도>의 역사를 설명하고 현대미술관이 국제적인 위치로 발돋움 하기 위해선 신임관장이 그간의 불미스러웠던 과거를 엄중히 조사,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 그러나 마리 관장 답변 없음.

 

2016년 3월 28일

법조계의 명망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위작 미인도 폐기와 작가 인권 옹호를 위한 공동 변호인단> 발족.

공동 변호인단은 “위작 미인도 사건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여준 행태는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와 유사하다. 대한민국 현대미술사에 이러한 비극이 더 이상 재발되어서는 안 되며 작가의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며 이에 공감하는 뜻있는 변호사들이 모여 공동변호인단을 발족하게 되었다고 밝힘.  공동변호인단의 명단은 다음과 같음.

 

배금자 변호사(전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해인법률사무소 대표

위철환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동수원종합법무법인 대표

오욱환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한원국제법률사무소 대표

박영수 변호사(전 대검중수부장, 후에 박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특별검사에 임명됨으로 사임했다.) 법무법인(유한)강남 대표

이삼 변호사 (전 서울고검 검사), 법무법인(유한)정률대표

박용일 변호사(전 부패방지위원회 위원), 변호사박용일사무소

김선수 변호사(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단장), 법무법인 시민 대표

임통일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무법인(유)강남 대표

김선양 변호사(현 국회입법지원 위원), 법무법인 한백 구성원

2016년 4월 27일

차녀 김정희와 공동변호인단은 현대미술관 전 현직 관계자 6명을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사자 명예훼손, 공문서 허위 작성, 저작권법 위반혐의등으로 서울 중앙 지방 검찰에 형사 고소고발함.

2016년 9월 19일

검찰의 수사일환으로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 연구소 감정팀 서울 도착

9월 28일까지 <미인도>와 천경자화백의 동시대 진품 아홉점을 다중스펙트럼 기술로 촬영, 초고해상도 화질로 디지탈화, 단층비교하는 집중적인 작업에 몰두.

2016년 10월 26일

뤼미에르 광학 연구소 63 페이지에 달하는 최종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

총 9개의 검증에서 <미인도> 는 일관적으로 위작임이 밝혀짐.

(본 웹사이트의 ‘위작 미인도 사건’ 안에 프랑스 뤼미에르 보고서 전문이 실려있습니다.)

2016년 12월 19일

 

검찰, 침묵 끝에 <미인도> 수사 결과 발표. 서울 중앙 지검 형사 6부 (배용원 부장검사)는 이 사건의 핵심이었던 현대미술관 전 현 관계자의 거짓말 유포 혐의 사실에 대해서는 일체 기자회견에서 언급하지 않고,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함.

그 근거는 김재규 전 중앙정부부장의 집에서 나왔다는 주장, 이미 현대 미술관 측에서 ‘안료는 누구나 쓰는 것이라고’ 당시 과학보존실장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안료가 천 화백 그림에서 발견된 것과 같다는 주장 ( 그 일부 안료란 동양화 재료중 가장 흔한 호분을 말함), 엑스 레이 등 시대에 뒤진 방법으로 <미인도>의 밑층에서 스케치 선이 나왔다는 것 등이었음.

혐의자 중 한명이 불구속 기소되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음.

 

2017년 1월 24일

차녀 김정희와 공동변호인단 검찰의 결론에 불복 항고장 제출.

 

2017년 2월 13일

프랑스 공영방송 채널 2 의 인기 아침 프로 텔레마텡에서 <미인도> 사건과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광학연구소에 대해  자세히 보도.

 

2017년 3월 17일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의 파스칼 꼬뜨 연구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 일컬어지는 이태리 볼로냐 대학에서 열린 “과학과 미술” 학술대회에서

‘미인도 사건을 통해 본 최신과학감정 기법과 그 법적인 의미’ 라는 주제로 두차례에 걸쳐 발표. 꼬뜨 연구원은 이태리 국립 미술품 과학감정 연구소에서 주최한 이 학술대회 조직 위원회의 과학 분과 위원으로 위촉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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